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관광지 및 여행 정보 종합 안내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 관광지 종합 안내

◈ 자바의 중심 말리오보로 거리(Jalan Malioboro)

2km 길이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 잡고 있는 말리오보로는 뚜구(Tugu)기념탑에서 술탄왕궁까지 연결되어 있다. 자바 도시의 중심 거리이자 최고의 명소인 말리오보로 거리를 중심으로 여러 도로가 나 있으며, 은행, 호텔, 쇼핑몰, 수많은 비즈니스 센터들이 자리 잡고 있는 도시의 중심이다.

네덜란드 정부청사로 사용되었던 그둥 아궁(Gedung Agung)이라는 건물을 말리오보로의 끝에서 만날 수 있다. 건물 앞에는 네덜란드 성채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지금은 브레덴버그(Vredenburg)박물관이 들어서 있어, 퍼포먼스와 전시회 등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6월에 있는 족자카르타 예술축제는 이 건물이 중심이 되어 이뤄지고 있다.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 밤에 말리오보로의 운치를 느끼며 걸어보는 것도 좋다.

◈ 보로부두르 불교사원(Borobudur)

보로부두르 불교사원은 세계 7대 불가사이에 속하며 너무나 유명한 최대의 불교 유적지이다.
인도양을 건너 전래된 불교는 인도네시아에서 모국인 인도를 능가할 정도의 문화를 꽃피웠으며 역사적인 가치는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와 쌍벽을 이루고 있다. 족자 시내에서 42km 떨어져 있는 이곳은 야자수가 펼쳐진 게도우 분지에 세계 최대 불교 유적으로 장엄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1814년 당시 자바를 점령하고 있던 영국의 충독 라플즈에 의해 밀림 속에서 발견되어 10세기 동안의 긴 잠에서 깨어나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그 이후는 주권을 빼앗은 네덜란드 당국에 의해 관리되어 1907년부터 4년간 복구 공사을 하였으며 1973년 아시아의 유적으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주도로 대규모의 보존, 보수작업이 행해져 배수로 등 새로운 토목기술도 추가해서 건축된 곳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산스크리트어(고대 인도 언어)로 '보로=승방' '부두르=높게 쌓아 올린 곳'이란 뜻에서 '언덕에 세워진 승방'으로 해석하는 설이 있는데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건립된 시기는 8세기 중반 중부 자바에 번영한 샤일렌드라 왕조라고 생각되는데 그 연대는 정해져 있지 않고 공사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이 보로부두르 사원이 천년동안 역사에서 소각되었다가 다시 발견되었는데 무슨 원인으로 이 정도의 건축물이 1814년 흙 속에서 발굴되기까지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일까.

이 사원의 건축에 쓰인 100만개의 안산암의 채석 장소도 머라삐 산의 돌이라는 설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발견된 것은 없고 왕조의 쇠퇴, 전염병의 만연, 머라삐 산의 분화에 의한 매몰설 등이 있으며 보로부두르 사원의 토대에 사용된 흙과 사원을 덮고 있던 토사의 토질이 동일한 점에서 완성과 동시에 묻혀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사원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 변이 124m인 정방형이다. 안산암을 잘라낸 100만 개 이상의 돌 벽돌을 사용하여 전체 9층, 높이 42m까지 내부의 공간 없이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쌓아 올라갔다. 규모로만 본다면 세계 최대의 단일 불교 탑이다.

흔히들 앙코르와트를 세계 최대의 불교사원으로 꼽는다. 하지만 앙코르와트는 여러 건축물들이 이어져 있는 형태인데 비해 보로부두르 사원은 피라미드처럼 단 하나의 대 석조물로 만들어진 석탑인 것이다.

공간 없이 쌓아올린 석조물의 무게는 무려 350만 톤에 달해 지반이 점점 침하하고 있어서 원래 42m이었던 사원의 높이는 현재 35.3m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총 350만 톤에 이르는 돌덩어리를 어디에서 운반하여 왔을까?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사원을 중심으로 30km 이내에는 같은 재질의 돌을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다.

사원을 이루는 회랑 벽에는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새겨져 있고 부조는 모두 2,500면, 부조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1만 명에 달하며 '거대한 조각의 숲'을 이루고 있다. 회랑의 부조 조각들은 불교 미술의 최고의 수준과 양을 자랑한다. 기단에는 종 모양으로 된 총 73개의 스투파들이 있는데, 스투파 속에 있는 불상의 약지에 손을 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사람들이 기를 쓰며 팔을 뻗지만, 실제로 닿기는 매우 어렵다. 거대한 사원은 오랜 잠에서 깨어나 그 모습을 우리 눈앞에 드러냈지만 과거의 역사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그리고 어떻게 건축하였는지, 그리고 어째서 1천년 동안이나 밀림에 파묻혀 있었는지 확실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피라미드형 구조로 일체를 이루고 있는데, 최하부의 기단은 한 변이 약 120m에 달하고 높이는 31.5m(복원 전 원형은 42m)에 달한다. 모두 10층으로 되어 있으며 등신대 크기의 불상 504개와 약 3.5m 높이의 불탑(stupa) 72개가 층별로 기하학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모든 것에 소요된 돌덩이만 해도 100만개가 넘는다고 하니 가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보로부두르 사원의 경이로움은 이러한 엄청난 규모의 거대한 구조물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설계되었고 고도의 상징적인 의미를 그 구조 안에 담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정방형의 회랑으로 이루어진 1층에서 6층까지는 외부를 볼 수 없게 되어 있고, 대신 양쪽 벽에 쉽게 불교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는 부조(浮彫, relief)를 새겨 놓아 사람들의 눈길을 그 부조들로 이끈다. 그것을 모두 순서대로 다 보려면 회랑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10회를 돌면서 6층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회랑이 요철(凹凸)모양으로 되어 있기에 총 길이는 무려 5km에 달한다고 한다.

회랑은 제1∼4회랑으로 구성되고, 제4회랑에서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스투파(종모양의 불탑)들이 서 있는 기단으로 나온다. 그러다가 7층에 올라서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눈앞에 산과 대지가 펼쳐지게 된다. 이 희열감은 바로1층에서 6층까지 길고 긴 배움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비로소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확 트인 둥근 단으로 구성된 7층에서 10층까지는 이제 배움의 과정이 아니라 명상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 공간이 된다.

이처럼 보로부두르 사원은 신전이라기보다는 사원을 오르면서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교육의 장으로서 지어졌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미국 태생의 인류학자 존 미크식(John Miksic)도 그의 책 <보로부두르의 미스터리(The Mysteries of Borobudur)>에서 보로부두르를 오르는 육체적 행위는 동시에 '세속(世俗)'에서'법열(法悅)'로 어지는 정신적 고양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단지 추측일 뿐이며, 보로부두르를 언제,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완전히 해명되지 않고 있다. 추측컨대는 8세기 중엽에 들어선 불교 왕조 샤일렌드라(Sailendra) 시대에 약 70여년에 걸쳐 지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9세기 중엽에 들어선 힌두 왕조 산자야(Sanjaya) 시대에 보로부두르 사원은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상태에서 1006년에 폭발한 인근 메라피 화산(Mt. Merapi)의 화산재에 묻힘으로써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숨겼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어 확실한 것은 없다. 또 사원의 기초에 쓰인 흙과 사원을 덮고 있던 흙의 성분이 같다는 점을 들어,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완성과 동시에 묻혀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보로부두르의 정체는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왕의 묘, 왕조의 사당, 승방, 우주를 상징하는 구조물 등 여러 가지 의견이 구구하지만 확실하게 규명된 것은 없다. 그러다가 약 천 년 후인 1814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었으나 당시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네덜란드는 발굴된 많은 불상들의 머리를 절단하여 태국의 왕에게 선물로 주는 등 오히려 훼손을 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보로부두르 사원에 있는 불상들의 약 35%는 두상이 없다. 1천 년 전 밀림을 헤치며 대 토목 공사를 벌였던 샤일렌 왕조의 사람들은 사라졌고, 그들의 자취를 찾는 이방인들만 모습을 보인다.거대한 사원의 원래 주인들은 불가사의와 신비 속으로 사라졌지만 속세와 인연을 끊은 채 긴 세월을 침묵으로 지켜왔던 인내는 그 보상을 받아 오늘날 보로부두르 사원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으로서 남아 있게 되었다.

◈ 끄라똔(Kraton) 왕궁

끄라똔은 마따람 왕조의 분열로 족자카르타의 군주가 나온 다음인 1755년에 축조됐다. 자바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거대한 왕궁이다. 안뜰과 누각들 가운데 있는 구조물은 1757년에 완성되었다. 이 문 입구에 꼬리가 뒤엉킨 두 마리의 뱀이 각기 반대 방향을 향해있는 그림이 있다. 이 궁의 가장 중요한 축조물은 중앙 안뜰에 있는 프로보옉소 누각양식에 금을 입힌 것이다. 이 누각은 대부분의 누각이 그런 것처럼 벽과 창문이 없는 우아한 나뭇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군주는 여기에서 왕실의 손님을 받고 특별히 무희를 훈련시켜서 춤을 추게 하고 연회를 베풀기도 한다. 크라똔은 그레베그 의식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며 회교도들의 가장 중요한 3대 축제와 동시에 1년에 세 번 행사가 개최된다.

오늘날 끄라똔에는 왕실의 관례와 유산, 거대한 보석이 박힌 가죽 와양 인형, 왕실 수집품, 왕실 비품과 유럽 및 인도네시아 고유의 장식품들, 과거에 왕실로 초대되어 온 손님들이 보내온 진귀한 것들이 있다.

끄라똔의 고용인들은 검은 바띡, 혁대, 꼭 맞는 재킷, 단검, 그리고 바띡 두건을 입는다. 끄라똔은 관광객들에게 개방된다. 케빈 광장 입구 가까운 곳에 있는 관광 서비스 사무소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디엥 고원(Dieng)

족자에서 하루 코스로 디엥 고원을 관광하려면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야 시간상으로 무난하다. 고도 2000m의 분화구 벌판 안에 있는 마을로 구불구불한 길을 버스로 계속 올라가면 눈에 익은 열대 풍경이 바뀌며 고원에 들어서면 맑고 청량한 공기에 휩싸인다. 디엔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신들의 자리'라는 의미로 자바 고대부터 토착적인 산악숭배의 성지이며 중심지가 되었다. 조용한 마을에 남아 있는 남인도 양식의 유적이나 사원에서 지나간 날의 영화가 느껴진다. 자바에서 가장 오래된 '빤다와' 사원군은 8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마따람 왕조시대에 지어진 자바 최고의 힌두 유적이며 다섯 개의 사원에는 각각 고대인도 서사시 마하바라따 영웅들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이곳에서 길을 따라 가면 보존 상태가 좋은 가뚱까짜 사원이 나오는데 옆에는 박물관이 있고 디엥에서 발견된 시바 신상이나 힌두 이야기를 새긴 부조의 일부가 정리되지 않고 놓여져 있으며 이곳에서 남쪽으로 더 가면 세 갈래 길이 나오고,곧 숲에 둘러싸인 조용한 언덕에 선 '비마' 사원에 도착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얼굴상 장식은 자바에서는 유례가 없는 것이다.

◈ '즐거운 정원'이라는 이름의 따만사리(Taman Sari : Water Palace) : 수성(水城)

술탄 하멩쿠부워노1세(Hamengkubuwono I)에 의해 1758년에 왕족의 쉼터와 유쾌한 공원으로써 건립되었으나, 1867년 지진피해로 지금은 끄라똔의 서쪽에 일부분만이 남아 있다. "따만사리" 라는 뜻은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의미로,수성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 성은 더 이상의 파괴를 막기 위해 수영장과 아치형의 문에 통행을 제한하여 두꺼운 벽으로 막고 있다.

문화전문가들은 수성은 다양한 목적에 따른 기능을 설명하고 있다. 첫째, 쉼터로서의 기능으로 아름다운 공원이 조화를 이루는 수성의 형태를 말한다. 인공호수와 수로, 수영장, 다양한 나무로 이뤄진 거대한 정원들 등은 쉼터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둘째, 스포츠와 여흥을 위한 장이다. 보트와 수영, 사슴 사냥, 전통무용 베도요(Bedoyo)와 스림피(Srimpi), 가믈란(Gamelan) 음악 등으로 스포츠와 여흥에 적합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셋째, 명상의 장소이다. 넷째, 중요한 왕궁으로서, 술탄의 거처로서의 기능이다.

또한 수성은 6개의 대포를 갖춘 2개의 요새로 술탄의 안전한 거처로서 기능을 갖추고 있다. 왕의 군사들은 수로노토(Suronoto), 부지산(Bugisan)과 근위병으로 왕궁의 북쪽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요 입구 마다 앞에 초소를 두고 왕궁을 지켰다. 지하통로는 물이 범람을 막아주는 보안시스템으로 사용되었다. 술탄은 고도의 보안 경계 시스템을 갖추었다. 당시 술탄은 끄라똔에서 이곳으로 걸어서 오거나, 수로를 이용하였다.

수성은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곳에 위치하며 새 시장에서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즐거운 정원 입구의 길을 따라 바띡 상품들이 늘어서 있어, 토속 시장을 함께 느낄 수도 있다.

◈ 마따람 왕조, 수라까르따 왕조의 왕실 묘가 있는 이모기리(Imogiri)

족자카르타와 수라카르타의 왕족의 공동묘지가 있는 이모기리는 족자카르타 남동쪽 17km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버스나 차량을 이용하게 갈 수 있다. 이슬람의 마따람 왕조의 3대 왕인 술탄 아궁 한욕로쿠수모(Sultan Agung Hanyokrokusumo)의 무덤이 345개의 돌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는 언덕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다. 술탄 하멩쿠 부워노 9세(Sultan Hamengku Buwono IX)와 가족들을 시작으로 하여, 마타람왕조의 모든 왕들과 수라카르타왕조의 왕들과 가족들은 이모기리 왕실 묘지에 묻혔다.

1645년에 건립된 이 묘지를 찾는 방문객들은 꼬따 그데(Kota Gede.16세기 마타람 왕조의 수도)인들이 입는 자바의 전통의상을 입어야 한다. 입구에서 유료로 전통의상을 대여하고 있다. 345개의 돌계단을 올라 무덤입구까지는 매일 오픈되어 있지만, 무덤의 입장은 월요일 09:00~12:00과 금요일 13:00~16:00 단 두 번만 가능하다. 라마단(Ramadhan; 이슬람력으로 9번째 달)동안에는 공개되지 않는다.

◈ 쁘람바난(Prambanan) 사원

이 거대한 시바의 사원은 족자카르타 최북단에 위치한 마을에서 이름을 따왔다. 지역적으로는 'Lore Jonggrang'사원 또는 '날씬한 처녀의 사원' 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인도네시아의 힌두사원으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표방된다. 족자카르타의 동쪽 17km 되는 곳에 있는 이 절은 9세기 중반에 바리퉁 마하 삼부 왕에 의해 건설되었는데, 유명한 라마야나 이야기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밀폐된 극장과 함께 새로운 노천극장은 달밤에 라마야나 발레를 공연한다. 극장에는 1011명의 관객이 앉을 수 있으며 일 년 내내 공연이 있다.

Prambanan의 사원단지에는 8개의 사원이 있는데 그중 3개는 시바, 비스누와 브라마를 모신다. 주사원인 시바의 사원은 높이가 47m이며, 시바의 요정인 두르가(Durga)의 동상이 따로 지어져 있다. 그것은 자바에서 가장 우아하고 높이 평가할 만한 신상중의 하나이다.

이곳에는 또한 인도네시아에서 자라는 100여종의 난초공원이 있다. 또한 새들이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새공원도 있다. 매력적인 곳의 하나로 입체극장에서 나라의 경치와 사람들에 대한 '인도네시아 인다'를 IMAX 필름으로 정규적으로 보여준다.

◈ 해발 2968m의 가루다봉이 있는 머라삐 화산(Mt. Merapi)

정상인 뿐짝 가루다(Puncak Garuda)로 유명한 머라삐 화산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활화산 중 하나이다. 'Meru'는'산'을 의미하고, 'Api'는 불을 의미하는 자바어의 합성어인 머라삐라는 이름에서 산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최근 화산 폭발은, 1998년 7월 11일 토요일 오전 4시 59분에 불길한 소리와 미동이 화산 폭발을 암시하였다. 폭발은 바로 이어졌고, 검은 연기가 산 정상 3,000미터 위까지 올라 하늘을 뒤덮었다. 뜨거운 연기와 화산재, 파편이 수 킬로미터까지 분출되었다. 화산재는 화산 서쪽 60km까지 영향을 끼쳤다. 1994년에 폭발한 화산은 66명의 사망자를 냈으며, 1930년에는 1,300명의 사망자를 내는 위험한 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최근에는 2006년 5월 27일 새벽, 강도 6.2의 지진이 일어나, 이로 인한 머라삐 화산의 폭발 위험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항상 머라삐 화산이 화산을 분출하는 등 자연재해만을 주지는 않는다. 땅에 비옥함을 주며 자연을 지키면서 우뚝 서 있다.

◈ 아름다움을 저주받은 니로로끼둘의 전설이 깃든 빠랑 뜨리띠스 해변(Pantai Parangtritis)

족자카르타 도심에서 자동차로 30분정도면 갈 수 있는 빠랑뜨리띠스 해변은 족자에서 남쪽으로 27km 떨어진 인도양에 자리 잡고 있다. 울퉁불퉁하지만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한 자바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빠랑트리띠스 해변은 수십 년 동안 현지인과 외부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빠랑뜨리띠스 해변은 아름다운 경치와 더불어 그곳에 깃들어 있는 역사로도 유명하다. 빠랑트리티스 지역은 빠랑뜨리티스 해변, 빠랑 꾸수모(Parang Kusumo), 금비로와띠 언덕(Gembirowati highland)으로 되어 있다.

인도양의 거친 파도가 만들어낸 불모의 땅인 해변의 모래언덕과 회전초는 현지인들은 서쪽바다(인도양)의 여신인,니 로로키둘(Nyi Roro Kidul)영향력 아래 풍속을 따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여신은 변덕스러워 상상 이상으로 사랑스럽다가, 어떤 때는 끔찍할 만큼, 잔인하게 바다와 해변을 흔들어 놓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해변에 그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과 어부들은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다.

◈ 족자카르타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소노부도요 박물관(Sonobudoyo Museum)

술탄왕궁의 북쪽광장의 북쪽 편에 자리 잡고 있는 소노부도요 박물관은 1935년 자바 건축양식으로 건립되었다. 입구 건축물은 꾸두스(Kudus)에 있는 모스크의 입구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입구는 메인 광장인 뻰도포(Pendhopo)와 벽이 없는 메인 건물인 조글로 인둑(Joglo Induk)간을 연결하고 있다. 족자카르타에서는 중앙박물관 다음으로 문화 예술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소노부도요 박물관은 신석기시대의 도기 유물, 자바 중앙의 사원으로부터 나온8,9,10세기의 청동 유물과 조각상, 매우 다양한 탈, 그림자 인형연극에 사용되었던 꼭두각시, 발리에서 나온 고대 무기 등이 전시되고 있다. 박물관은 자바문화 관련 다양한 고대서적이 보관되고 있는 흥미로운 도서관이 있다.

Jl. Trikora No. 6 Telp (0274) 385664

◈ 삽또 후도요(Sapto Hudoy) 예술관

삽또 루도요 예술관은 Jl. Solo에 위치해 있다. 이곳엔 후도요의 작품과 함에 다른 여러 작품을 전시 판매한다.

◈ 스니 소노(Seni Sono) 미술관

족자카르타에서 가장 큰 미술관이다.

◈ 아판디(Affandi) 박물관

공항에서 차로 가는 주요 간선 도로에는 아판디의 집이 있는데, 이 집은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국제적인 화가로 알려져 있다. 우거진 정원을 가진 독특한 가옥으로서 인도네시아의 초기 인상파 화가의 작품과 그의 딸 카르티카의 작품을 아판디의 것과 함께 전시한다. 입장료는 무료이다.

◈ 바공 꾸스디하드요(Bagong Kussudihardjo) 스튜디오

자바의 무용극으로 유명한 바공은 새로운 무용의 창작과 바띡 그림의 예술적인 측면을 그의 제자들에게 훈련시킨다. 그는 도시의 서쪽부근에 스튜디오를 갖고 있으며 족자카르타의 동쪽 변두리에도 가지고 있는데 공항에서 주도로를 따라 가면 조용한 길가에 있다.

◈ 바띡 중앙 연구소

도시의 동쪽 변두리에 위치한 연구소는 옛날에서 현대까지의 바띡 디자인을 상설 전시한다. 바띡을 만드는 과정도 여기서 볼 수 있는데, 손으로 만드는 것과 스탬프를 찍는 것을 모두 볼 수 있다.

◈ 까송안(Kasongan)

족자카르타에서 남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까송안 마을은 지난 10년간 예술적인 품격을 지닌 토기 생산지로 유명하다. 이 마을은 수세기 동안 간단한 가정용품들을 공급해왔다. 현대의 예술가들에 의해 조직된 유통경로 때문에 진품의 도기그릇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 암리 자야(Amri Yahya) 미술관

족자 예술학교를 졸업한 Amri Yahya는 바띡 그림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다.

◈ ASRI

예술학교는 시의 서쪽에 위치하여 인도네시아 예술의 진흥과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한다. 학교는 족자카르타와 인도네시아 외에 다른 주요 도시에서 정규적으로 전시회를 갖는다.

◈ ASTI

인도네시아 무용학교는 인도네시아에 몇 안 되는 학교의 하나로서 주로 고전적인 3가지 댄스 형식을 가르치는데 자바와 발리 선다의 형식을 가르친다. 방문객들은 연습하는 과정을 언제든지 볼 수 있다.

◈ 족자 은세공 산업의 중심지 꼬따 그데(Kota gede)

족자카르타의 남동쪽으로 약 5km 떨어진 꼬따 그데는 위대한  마따람 제국이 있던 곳으로 깨끗하고 아담한 마을이다. 돌로 지어진 집들이 있는 이 마을에는 마따람의 첫 번째 통치자의 무덤이 발견됐다. 1930년대 이래로 꼬따 그데는 족자의 은세공 산업의 중심지가 되어왔다. 꼬따 그데는 말이 끄는 사륜마차인 안동이나 버스 또는 택시를 타면 쉽게 갈 수 있다. '족자 실버'라 불리는 은세공업자들은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예술품을 만드는 과정을 보러오는 것을 환영한다.

◈ 깔리우랑(Kaliurang)

족자카르타에서 북으로 24km 떨어진 곳에 Merapi산의 경사면에 있고, 매혹적인 풍경으로 둘러싸인 휴양지가 있다. 'Telogo Muncar'라는 폭포와 수영장은 이 휴양지를 완전한 위락지역으로 만들어준다. 이 폭포 가까운 곳에 'Telogo Putri'라는 수영장이 있다.

깔리우랑은 또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의 이권관계가 얽혔던 역사적 장소로 1948년 우방들의 힘에 의해 재탈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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